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경제학을 위한 변명, 경제학을 위한 고언, 경제학 회의론에 대한 진지하고 친절한 응답. 또는 경제학자 사용설명서.

경제학을 변호하려면 경제학을 잘 알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고언을 건네려면 경제학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 자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들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저자 대니 로드릭 교수는 이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수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탁월한 연구자로서 학계의 연구 성과는 물론 경제학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그는 (그가 본문에서 밝히듯) “비정통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로드릭 교수는 능숙하게 질문을 분류하며 책을 시작한다. 하여 이 책은 다음의 질문과 그 대답으로 요약된다. 경제학자들은 왜 모형을 사용하는가? 완전경쟁시장을 위시한 표준모형은 경제학의 유일한 보편모형인가? 언제 어떤 모형을 사용하는가? 왜 “이론”이 아닌 “모형”인가? 경제학의 실패는 모형의 실패인가? 경제학 비판은 타당한가? 모형으로 시작해서 모형으로 끝난다고 여겨지면 맞다. 경제학 비판이 대부분 (수리)모형과 모형화에 집중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이들 질문에 답하며 드러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은 경제학이 모든 환경에 적용되는 일반이론보다는 다양한 모형의 집합이며, 그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론의 지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론은 본디 보편을 지향한다. 케인스의 저 유명한 저서 제목 역시 <일반이론>이 아닌가? 그는 학계 바깥에 가장 널리 알려진 주제 두 가지를 사례로 든다. 거시경제학 학파 논쟁과 미국 불평등 원인 논쟁이 그것이다.

케인지언-새고전학파 논쟁이 일반 대중에 소개될 때면 흡사 무협소설처럼 학파 간 대립과 논쟁의 승패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로드릭 교수는 다른 관점으로 거시경제학 논쟁사 – 또는 발전사 – 를 요약한다. 그는 한 쪽의 우월성을 역설하기보다 두 학파의 소산을 상황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모형으로 소개한다. 황희 정승 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먼저 이들 이론이 모든 상황·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일반이론으로 발돋움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방점은 “실패”에 있지 않다. 그는 이들이 특수한 환경 하에서는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그 한계를 드러냈으나 여전히 유용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새고전파 모형은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경제학자들의 소임은 경제의 현 상태가 두 모형의 가정 중 어느 쪽에 들어맞는지 파악하여 더 적절한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 논지는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이 탐구하는 대상이 고정불변의 항구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하기 어렵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늘상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수는 있겠다. (가령 트럼프 감세안을 두고 Summers-DeLong-Krugman, Mulligan-Mankiw-Cochrane 등이 벌인 키배)

불평등은 어떤가? 여러 학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심화된 미국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세계화와 국제무역에 의해 비숙련 노동자 임금이 하락했다는 설명이 먼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숙련 노동자 임금 상승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숙련편향적 기술진보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 이론은 불평등 확산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했으나 역시 전부는 아니었다. 학자들은 정책 및 제도적 요인을 추가로 감안하여 불평등을 설명했다.

즉, 다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론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의 인과 메커니즘을 식별하는 일군의 모형이 동원된 것이다. (로드릭 교수는 “역사를 볼 때,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쓴다.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제1, 2 기본법칙”을 제시한 토마 피케티 교수를 에둘러 디스한 것일까? 한편 인적자본과 대체탄력성이 최근의 성장-분배 논의에서 그나마 가장 포괄적인 틀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지난 30년간 경제학의 변화, 경제학자들이 가진 편향 등을 학계 내 인물로서 정확하고 공평하게 쓰고 있다. 학부생 시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회의가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나는 숱한 책과 강의 사이에서 헤맸다. 로드릭 교수는 내가 고민했던 문제 대부분을 친절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또는 경제학자와 비경제학자 모두가 참조할 만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비경제학자들을 위한 책이지만, 경제학을 안다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에필로그의 <20계명>에는 경제학자 특유의 유머가 살아 있다. 경제학이 비전공자와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매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무턱대고 읽으라고 하는 경제학도가 재수없는가? 그럼, 이 책을 읽으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시티즌 경제학』(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2002),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대니 로드릭, 2011),『99%를 위한 경제학』(김재수, 2016)을 권한다.

덧. 이 책에는 201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의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된 후 티롤 교수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의 기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티롤의 대답은? “나의 기여를 짧게 요약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로드릭 교수는 이 일화를 경제학 연구 결과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제시했지만…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인 나로서는 티롤의 끝없는 논문 목록이 생각날 뿐이다. 암요, 요약하기 힘들고말고요.

덧2. 사실 경제학이 일반이론을 지향하기보다 모형의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이 되면서도 살짝 아쉽다. 우리는 Grand Theory를 안 찾는 것일까? 못 찾는 것일까? 못 찾는다면, 사회과학으로서의 본질적 한계 때문인 것일까? 문득 물리학에도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갭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두서없는 이야기.

덧3. 원제와 역제의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Economics Rules”와 “그래도 경제학이다”. 드물게도 둘 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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