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1219 끝이 시작이다』, 2013.

문재인, 1219 끝이 시작이다, 2013. 서평은 아니고 메모.

성공한 재수생의 오답노트. “문재인의 생각”이라는 제목이 어울리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대 대선 낙선 후 직접 쓴 대선 평가보고서이자 19대 대선 출사표다. 그가 이 책의 복기를 충실히 따랐다는 글을 보고 읽어보았다. 읽으며 문재인이라는 인물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엿보이며, 이후 행보와 엮어서 생각해 보면 마키아벨리스트로서의 모습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아마 당선 후 행보도 오랫동안 계획해 왔으리라 짐작한다.

내용상 홍영표 의원이 쓴 『비망록』과 쌍을 이룬다. 『비망록』은 주로 18대 대선 과정 및 패배 요인을 야권단일화·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룬다. 반면 이 책은 주제별로 대선 패배 요인을 분석하는 한편 간단하게나마 향후 전략을 내놓는다. 문 대통령의 2013년 이후 동선은 철저히 이 책에서 짚은 패배 요인을 보완하는 움직임이다.

낙선한 후보로서 직접 진단한 패인의 핵심은 결국 당과 후보의 역량 부족이다.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은 부차적인 문제라며 선을 긋는다. 자연스레 19대 대선의 지상과제는 민주당 혁신이다. “진보 교조주의·근본주의 극복” 역시 반복해서 주요 과제로 언급한다.

그러나 탄핵이 없었다면, 이렇게 본인이 책을 써 가며 복기하고, 그대로 실천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홍준표가 득표자 네 명 중의 한 명의 표를 획득하지 않았나.

아래는 책 내용과 정알못의 잡다한 생각을 “”너절하게”” 적어 본 것이다.

1. 2012년 대선 전후 경과 관련

“결국 저와 민주당의 평소 실력 부족이 근본적인 패인입니다. 거기에 국정원의 대선공작과 경찰의 수사 결과 조작 발표 등의 관권 개입이 더해졌을 뿐입니다.”
→ 패배 소감 한 줄 요약.

“열심히 한 사람들은 노고를 치하받기는커녕 당내에서도 죄인처럼 돼 버리고, 오히려 손을 놓은 채 남의 일인 양 구경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닙니다. (..) 다른 의견을 말하면, ‘패배 책임을 둘러싼 내부 갈등’ 이란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 도대체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 분명한 것은 그런 일들이 민주당의 발전과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 선거 패배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정당한 평가가 없다는 지적의 연장선에서 나온 언급. 이 책이 출발한 문제의식이다.

“저는 그때의 지도부 퇴진과 이후 들어선 지도부 흔들기로 대선 시기 민주당의 리더십을 세우지 못한 것이 대선 패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반성과 책임’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기실 당내에서 제기된 책임론의 목표는 반성이 아니라 당권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12년 총선 패배 이후를 말한다. 위의 지적과 맥을 같이한다.

“저는 ‘대선 평가’에서 진짜로 밝혀내야 할 것은, 비선 지휘부 같은 터무니없는 의혹이 만들어지는 민주당 내의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새누리당 출신이라도 데려다 써야 할 판에, ‘친노’라서 안 된다고 배제하게 만드는 민주당 내의 ‘그 무엇’입니다.”
→ 17년에 동일하게 반복되었던 친노 논란, 3철 논란 등을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이야기가 당시에는 당 내에서, 17년에는 국민의당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서 문재인은 승리를 위해 김종인을 데려와 앉힌다.

“제가 후회하는 것은 더 많은 지역의 지원 유세가 아니라,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선거구에 더 집중해서 지원을 못한 점입니다. (..) 상대적으로 이길 가능성이 높은 곳을 집중적으로 지원했으면 당선자를 더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론 조사 추이 등을 살펴 당선권에 육박하는 곳에 집중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했는데, 그런 전략이 없었습니다.”
→ 12년 총선 유세를 복기하며. 민주당은 2017년 대선에서 선관위·통계청·여론조사 자료를 결합하여 “선거 마이크로 전략지도”를 만들어 활용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스윙보터”를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려는 전략이었다.

“참모들에게 깨끗한 선거를 할 자신이 없으면 나서지 말자고 했습니다. (..) 떨어질지언정 불법 선거자금은 단 한 푼도 받지도, 쓰지도 않겠다고 다 함께 다짐했습니다. 경선에서도 본선에서도, 실제 그렇게 됐습니다.”
→ 참여정부 당시 대선자금 수사 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은 모양. 알려졌다시피 12년, 17년 모두 펀드레이징으로 선거자금을 모았다.

“2002년 방식으로는 흥행 효과를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경선 구도였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어게인 2002’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선 룰 합의에만 한 달 이상을 허비했습니다. (..) 황금 같은 시간을 우리끼리 룰 다툼에 날려 버렸습니다.” “당내 경선은 (..) 끝나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숙고해서 정교하고 효율적 룰을 미리 만들어 둬야 합니다. (..) 오랜 시간 전에 룰을 확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 2017년 대선 민주당 경선 역시 2002년의 완전국민경선제 + 지역순회 투표로 이뤄졌다. 그러나 2012년과 달리 흥행요소가 많았기에 효과적이었다(200만 명 이상 참여). 2017년에는 공식적으로 14일 만에 룰을 확정했다. 지난 1월 지지율 1위이던 문 후보는 당이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 민주당 혁신 관련

“지난 대선의 패인은 한마디로 평소 실력 부족이었습니다. (..) 후보인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벼락치기로 준비했던 일들을 5년 내내 하면 됩니다.”
“새누리당이 떵떵거리는 재벌이라면 민주당은 낡고 부실한 영세기업 같은 오랜 이미지에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대선 이후에 다시 고착되고 있는 새누리당 지지율 40퍼센트대, 민주당 지지율 20퍼센트대의 구도를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 2012년 민주당과 2017년 민주당은 완전히 다르며, 준비된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의 공천혁신이 없었다면?

“얽히고설킨 인연 끝에, 김대중·노무현 두 분 대통령과 김근태 선배가 그리 지키고 싶어 했고, 바꾸고자 했고, 집권당으로 만들고자 했던 정당의 당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이어서 걷게 됐습니다.”
→ “고난의 길”이라는 표현에서 그의 자기인식이 드러난다. 대선 과정에서 2015년 트위터가 주목받은 바 있다. “양산집 뒷산에 저수지와 편백나무숲을 끼고 있는 근사한 산책로가 있습니다. (..)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는 무엇을 얻고있는 것일까요?”

“저만 해도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민주당의 집권을 바랐지만, 당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민주당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의 생각이 대체로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민주당의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을 깨지 않으면 민주당의 혁신도 시민 참여 정치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 패배 후 지적한 민주당의 현실. 다 맞는 말이고, 나도 지난 총선 전까지 비슷하게 생각했다.

“왜 선거에서 지는 것일까요? (..) 저는 제 자신도 포함해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종의 근본주의에서 해답을 찾고 싶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이 보여 준 것은, 철 지난 교조주의와 근본주의의 한계였습니다.”
“국가, 애국, 안보에 대한 담론이 우리에게 부족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성장 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은 그 점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경제성장 전략 없이 국가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보수 진영보다 더 뛰어난 경제성장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국가 경영을 맡을 수 있습니다.”
→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자 선긋기. 그리고 경제성장 관련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나는 그가 17년 대선에도 언급한 소득주도성장론에 회의적이나, 진보의 병 중 하나가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 아니던가?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 측에서 내놓은 해괴한 기본소득 flow-chart를 떠올리면…

“이낙연 의원은 지난 대선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만, 막말이나 거친 태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접근을 싫어하는 성향을 ‘태도 보수’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태도 보수’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을까.'”
→ 이 이야기를 상당히 오래 한다. 이런 진단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새 정부의 주요 인사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걸까? 이낙연은 새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된다.

“당 공직 후보의 경우 당원들끼리 민심과 일치하지 않는 후보를 선출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이른바 ‘운동 정당’에서나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참여경선을 확대하고, 당원 구조의 개방을 위해 온라인 방법을 도입하는 것 (..) 정치 선진국 정당들이 가고 있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 이 글을 쓰고 2년 뒤 치러진 20대 총선 공천 과정은 이와 거리가 멀었으나, 어쨌든 온라인 입당 신청을 받긴 했다.

3. 기타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서 내수 주도 또는 적어도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갖추는 성장 전략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 내수 확충 이야기는 그만…

“남북관계를 우리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남한 경제에 직접 실익이 되는 문제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 솔직히 둘 다 걱정된다. 한국이 내수를? 남북경협이라는 비전은 좋지만 과연 가능할지? 더 많은 경제교류가 무력충돌의 안전판 역할을 하리라는 발상 역시 지금 와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 치고, 10년 안에 경제적 “실익”으로 돌아올지? 개성공단 노임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경제교류가 깊어지며 더 이상 그런 노임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안다. 그에 비해 개성공단 입주 리스크는 너무 크다.

“근본적으로는 입법을 반대했고 입법 과정에 문제가 있었긴 해도 법률이 무효화되지 않았다면, 법제화된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대중정당이 취할 태도라고 봅니다. 선거 때까지도 그러지 못했던 것은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의 근본주의 같은 것이 우리 속에도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대선 당시 “종편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당 내 불평을 언급하며. 주어진 제약을 어쨌든 받아들이자는 태도가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에 “민주-반(反)민주의 구도는 끝났다”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충분히 민주화되지 않았고, 더 교묘해진 비민주 세력과 맞서고 있습니다.”
→ 어디 민주-반민주 구도가 끝났다는 것뿐인가? 극우세력은 “과잉민주화” 운운했다. 그러나 탄핵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결과적으로 이 진단을 지지한다.